"병사 월급 200만원 공약해놓고 군예산 1857억 삭감"...'조삼모사' 논란

내년도 예산에서 병사에게 지급하던 현금성·현물 지원 사업 예산 1857억원이 삭감된 것으로 확인했습니다. 2024년부터 병사들은 생일날 특식으로 케이크를 받지 못하게 됩니다. 축구화 구매비나 이발비, 효도휴가비도 지원받지 못합니다.
2023년 10월 31일 내년도 예산안에서 병사에게 지급하던 현금성·현물 지원 사업 예산 1857억원이 삭감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정부가 병사 월급 200만원을 공약해놓고 정작 복지 비용은 삭감한 ‘조삼모사’라는 비판이 나옵니다.
국회 국방위원회 전문위원이 이날 펴낸 ‘2024년도 국방부 소관 예산안 검토보고서’를 보면,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에서 그동안 병사에게 현금성 또는 현물로 지원했던 사업 예산안 1857억원어치를 삭감했습니다. 정부가 내년도 병사 월급 인상을 위해 내년도에 증액한 예산(4131억원)의 45% 정도를 도로 삭감한 셈입니다. 병사 1인당으로 환산하면 평균 2만5000원의 월급 감소 효과가 일어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병사 월급 200만원 공약한 정부, 병사들 지원 예산은 1857억 삭감했다

세부 항목별로 보면 경축일 특식·영내자 증식(간식)·생일 특식 예산은 올해(1518억원)보다 15.3% 줄어든 1285억원으로 편성됐습니다. 설날, 추석, 국군의날 등에 지급하던 경축일 특식이 나오는 횟수는 연 9회에서 3회로 줄었습니다. 생일을 맞은 병사에게 1만5000원짜리 케이크를 사주기 위해 편성한 생일 특식 예산 48억4400만원은 내년도 예산에서 전액 삭감됐습니다.
병사 축구화 지원 비용(올해 29억5000만원)과 이발비(458억6300만원), 효도휴가비(58억9500만원)도 내년도 예산안에서 전액 삭감됐습니다. 자기개발비용 지원은 올해(359억7100만원)보다 절반이 삭감된 179억7200만원으로 줄었습니다. 자기계발교육 비용(562억3000만원)도 32.5% 줄어든 379억5300만원으로 편성됐습니다.
국방부는 각종 특식 비용은 기본급식비 인상을 고려했고 생일 특식은 ‘장병체력 보충’이라는 사업목적과 부합하지 않아 삭감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효도휴가비, 이발비는 과거 부족한 병사 월급을 보전하기 위해 지급한 현금성 복지예산이었으나, 병사 월급 인상에 따라 삭감했다고 해명했습니다. 자기개발비용은 기존 지원 품목에서 운동용품을 제외하면서 50%를 감액했다고 밝혔습니다.
대신 정부는 병장 기준 현재 130만원 수준인 병사 월급을 내년에는 35만원 더 올린 165만원(봉급 125만원+자산형성프로그램 40만원)으로 편성했습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이날 펴낸 ‘2024년도 예산안 분석 보고서’를 보면 ‘병 인건비 사업’에 편성된 예산은 3조2655억원으로 올해(2조8525억원)보다 4131억원 늘었습니다.
그러나 정부의 현금성·현물 복지 일괄 삭감은 이러한 병사 월급 인상 효과를 줄이는 조삼모사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국회 국방위 전문위원은 보고서에서 "각 사업은 직·간접적으로 병 봉급 인상 및 내일준비적금 지원율 인상 등과 연계하여 삭감된 것으로 판단된다"며 "이 경우 병 봉급 인상 폭에서 각 사업의 감액분만큼 실제 병사에 대한 지원이 줄어드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예산 삭감의 효과가 이병일수록 더 큰 것도 문제로 지적됩니다. 보고서는 "2024년 병장 기준 봉급은 25만원이 올랐지만 각 사업 감액을 월 단위로 환산하면 2만5000원이므로 실제 상승 폭은 22만5000원"이라며 "특히 이병은 봉급 인상 폭이 4만원에 불과하므로 실제 인상 폭이 매우 작아지게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보고서는 "대통령 공약인 ‘2025년 병사 월급 200만원’이 사실상 병사지원 사업 삭감과 병행 추진되어 실제 병사에 대한 지원은 200만원 수준에 이르지 못한다는 지적이 제기될 여지가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병사 월급 200만원의 의미

잠시 시계를 돌려 20대 대선 당시로 가봅시다. 병사 월급 200만원 공약은 당시 여당 후보 이재명 의원도 내세웠고, 정의당 후보 심상정 의원은 300만원을 공약으로 제시했습니다. 당시 대선에서 병사 월급을 최소 200만원 수준으로 인상하는 것은 주요 후보들 사이에서 보편적으로 합의된 사항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따져보면 두 후보와 윤 대통령 공약이 시작부터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재명, 심상정 의원은 모두 모병제 등 병역제도 개편의 조건을 걸고 공약을 제시하였습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병역제도 개편과 군 구조개혁 등의 조건 없이 ‘병역의무 이행에 대한 사회적 존중 공약’으로 제시하였습니다. 대통령은 대선 당시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곳에 쓴 예산을 삭감"하면 병사 월급 인상이 당장에 가능하다는 식으로 설명했습니다.
두 후보와 윤 대통령의 공약 차이는 엄밀히 말해 병역제도의 개편이 아니라, 병사들의 법적 지위와 노동자성을 인정하느냐 마느냐의 차이에 있었습니다.
모병제 전환은 병사를 징병체계를 통해 수급했다는 이유만으로 값싸게 부려먹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직업인으로서 적절한 임금과 수당, 복지를 누릴 수 있는 지위를 부여하겠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직업군인과 같은 공무원이 되는 것입니다. 윤 대통령이 위의 SNS 글에서 직접 언급한 대로 "국가안보를 위해 개인의 희생이 불가피할 때 그 희생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제대로 설계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적인 역할"이라는 생각에서입니다.

그러나 윤 대통령 취임 이후 병사 월급 200만원 공약 부분은 논란만 계속 커지다, 결국 병사 월급을 2025년까지 150만원 수준으로 올리고, 정부지원금을 덧붙여 월 실지급액을 205만원 수준으로 하는 단계적 상향안으로 절충되는 모양새입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5월11일 백령도 해병대 부대를 방문해 "정권을 인수하고 보니 재정 공약을 완전히 지키기 어려운 상황", "재정 상황이 나아지면 원안에 가깝게 실천하는 걸 최우선으로 하겠다"고 궁색한 답변만 남겼습니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병사 월급 200만원 공약에 대해 여전히 ‘이대남 달래기’ 수준에서 이해하고 있는 듯합니다. 병역의무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것은 병사들이 청약가점이나 군 경력 호봉 인정, 200만원 수준의 월급을 보장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병사라는 계급이 가지는 법적 지위가 모호하기 때문입니다.
병사는 공무원과 같은 임무를 수행하고, 월급도 나라에서 받으며, 행정처분으로 징계도 받습니다. 그러나 징집병이라는 이유로 소모품처럼 사용되다 전역하면 그만인 취급을 받습니다. ‘필요할 때는 강제로 불러서 쓰더니 괴롭힘을 당해도, 다쳐서 나와도 남 일’이 될 수밖에 없는 지위를 가지고 있기에 사회적 존중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병사 월급 200만원에 담긴 직업인으로서의 지위와 성격을 모두 헤아릴라치면 병역제도 개편부터 공무원 봉급체계까지 손을 대야 할 게 한둘이 아닙니다. 병역제도 개편은 군 구조개혁, 나아가 국가의 안보전략과도 맞닿습니다.
징집인구가 크게 줄면서 현 병역제도로는 2030년 이후 병력 유지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지적된 바 있습니다. ‘일단 이번만 달래서 넘어가면 된다’는 식으로 월급만 맞춰 준다고 하면 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는 몇년 뒤 더 큰 부담으로 들이닥칠 문제가 산더미입니다. 대통령이 병사 월급 200만원이라는 한 줄 문장 속에 담긴 이 의미를 제대로 보고 있는지 걱정입니다.